쉐르파는 단순히 고산지대의 안내인을 넘어서, 히말라야와 더불어 살아가는 독특한 문화와 철학을 가진 민족이다. 그들의 삶은 자연과 조화롭게 공존하며, 위험과 맞서 싸우는 동시에 공동체적 가치를 중시한다. 이 글에서는 쉐르파족의 기원, 생활양식, 종교, 가족 구조, 생계 방식, 그리고 오늘날 변화하고 있는 그들의 삶을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한다.
히말라야의 등뼈, 쉐르파는 누구인가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는 수많은 등반대 뒤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영웅들이 존재한다. 바로 ‘쉐르파(Sherpa)’라 불리는 이들이다. 그러나 쉐르파는 단순히 산을 오르는 데 도움을 주는 ‘가이드’나 ‘포터’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살아온 고유한 민족이며, 깊이 있는 문화와 철학, 공동체 중심의 삶을 이어온 사람들이다. 쉐르파는 본래 티베트어로 ‘동쪽 사람들’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는 그들이 과거 티베트에서 이주해 네팔 동부의 솔루쿰부 지역으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특히 해발 3,000미터 이상의 높은 지역에 마을을 이루고 살아왔으며, 이러한 환경은 그들로 하여금 고산에 적응된 유전적 특징을 지니게 했다. 과학적으로도, 쉐르파는 일반인보다 효율적으로 산소를 활용하고, 고지대에서의 활동에 뛰어난 신체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하지만 쉐르파의 정체성은 단순히 생물학적 적응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철학을 삶의 기반으로 삼는다. 그들의 생활양식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공존의 존재로 대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쉐르파 사회는 불교, 특히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생명과 자연을 존중하는 정신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오늘날에는 에베레스트 등 고봉 등반이 대중화되며 ‘등반 지원자’로서의 쉐르파가 더 널리 알려졌지만, 이들이 진정으로 보여주는 가치는 단순히 체력이나 기술을 넘어서는 것이다. 고산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공동체와 조화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자세야말로 현대 사회가 귀 기울여야 할 삶의 방식이 아닐까. 이번 글에서는 그러한 쉐르파의 다층적인 삶을 하나씩 들여다보고자 한다.
쉐르파의 삶: 공동체, 신앙, 노동이 어우러진 고산 생활
쉐르파의 일상은 고산지대의 혹독한 자연 조건 속에서 형성되어왔다. 이들은 해발 3,000미터 이상의 마을에서 가족 단위로 모여 살며, 작물 재배와 가축 사육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주로 감자, 보리, 메밀 등을 재배하며, 야크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생활 필수품의 공급원이 된다. 야크의 젖은 버터로 만들고, 털은 의복과 이불로 활용하며, 심지어 연료로 사용되는 배설물까지 버릴 것이 없다. 공동체 중심의 삶도 쉐르파의 중요한 특징이다. 결혼과 장례, 마을의 중요한 행사들은 공동체 전체가 함께 참여하며, 노동도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짐바’라 불리는 공동노동 시스템이 대표적이며, 서로의 집을 지어주거나 농사를 도울 때 돌아가며 함께 일하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는 단순한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적 연대의 표현이기도 하다. 종교는 쉐르파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대부분이 티베트 불교를 신봉하며, 마을 곳곳에는 ‘마니벽’이라 불리는 기도석이 쌓여 있고, 불경이 적힌 깃발인 ‘풍타’가 바람에 휘날린다. 그들은 자연 속 모든 존재에 영혼이 있다고 믿고, 산과 강, 나무에도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여긴다. 특히 에베레스트(쉐르파어로 '초몰룽마')는 신성한 어머니의 산으로 숭배 대상이며, 함부로 오르는 것 자체를 꺼리기도 한다. 하지만 쉐르파의 삶은 변화하고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 외국 등반대의 증가와 함께 ‘고산 가이드’로서의 쉐르파의 역할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일반 등반가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소(高所)에서의 작업을 도맡으며, 때로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 특히 매년 수십 명의 쉐르파가 위험한 아이스폴이나 산악 구간에서 사고를 당하고 있어, 등반 산업에 대한 윤리적 논의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쉐르파들은 그 일을 단순한 직업 이상으로 여긴다. 그것은 생계 수단이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문화와 지역을 세계에 알리는 일이며, 나아가 후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하기 위한 실천이다. 많은 쉐르파들은 번 돈으로 자녀를 교육시키고, 의료 시설과 학교를 유치하는 등 지역 발전에도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그들은 ‘산의 사람들’이라는 이름처럼, 위험과 숭고함이 공존하는 환경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질서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삶의 방식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고산 너머의 삶, 쉐르파가 주는 교훈
쉐르파의 삶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히말라야 등반의 조력자를 넘어선 존재임을 절감하게 된다. 그들은 혹독한 자연을 거부하거나 극복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공존하는 방식을 찾아낸 사람들이다. 산은 그들에게 위협이 아닌 삶의 일부이며, 위대한 스승과도 같다. 현대 사회는 빠르고 편리한 삶을 추구하며 종종 자연과의 단절을 자초한다. 반면 쉐르파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공동체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들의 세계에는 ‘함께’의 철학이 녹아 있으며, 이타심과 협력이 일상의 일부로 기능한다. 오늘날 쉐르파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외부 세계와의 접촉은 그들에게 경제적 기회를 안겨주는 동시에, 정체성의 혼란도 불러오고 있다. 하지만 쉐르파들은 그 변화 속에서도 본연의 가치를 지켜내고자 한다. 그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되,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뿌리를 놓지 않으려 한다. 쉐르파의 삶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가?’ 자연과 함께하는 삶, 공동체와 나누는 삶, 그리고 위험 속에서도 희망을 품는 삶. 그 모든 것을 한데 아우르는 존재가 바로 쉐르파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잊고 살았던 어떤 근본적인 가치를 되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