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100일, 기자회견으로 본 국정 운영의 현재와 미래
서론: 회복과 성장의 기로에서
2025년 9월 11일, 이재명 정부가 출범 100일을 맞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 초유의 사태 이후 치러진 조기 대선을 통해 탄생한 정부는 인수위원회도 없이 국정 운영에 돌입해야 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30일과 100일에 연이어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 운영 방향을 직접 설명하며 국민과의 소통에 나섰다.
두 차례의 기자회견은 새 정부의 국정 철학과 핵심 정책의 밑그림을 명확히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였다. 특히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메시지는 이재명 정부의 현재와 미래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100일은 '회복과 정상화를 위한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남은 4년 9개월은 '도약과 성장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모두발언 중
이 글에서는 취임 30일과 100일 기자회견을 중심으로 이재명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를 경제, 사회·노동, 정치·사법, 외교·안보 분야로 나누어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전망하고자 한다.
출범 100일, 소통으로 연 국정의 서막
이재명 정부는 '국민주권 정부'를 국정 철학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국정기획위원회는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며 123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이러한 기조는 국정 운영 방식에서도 드러났다. 통상 취임 100일을 전후해 열리던 첫 기자회견을 취임 30일 만에 앞당겨 개최하고, 사전 조율 없는 자유로운 질의응답 형식을 택한 것은 소통을 통해 국정 동력을 확보하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러한 소통 행보는 높은 국정 지지율로 이어졌다. 한겨레와 한국정당학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 평가는 62.7%에 달했다. 이는 국정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빠르게 수습하고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고 있다는 국민적 평가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이라는 100일 기자회견 슬로건처럼, 정부는 지난 100일을 혼란을 수습하는 '회복'의 시간으로 규정하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성장'의 시대로 나아가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경제: '진짜 성장'을 향한 확장 재정과 생산적 금융
이재명 정부 경제 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진짜 성장'이다. 이는 단순히 양적 성장을 넘어 국민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질적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선 공약집에서부터 강조된 '회복·성장·행복'의 3대 비전은 100일 기자회견에서 더욱 구체화되었다.
150조 '국민성장펀드'와 AI 강국 비전
성장 전략의 가장 상징적인 정책은 '국민성장펀드'의 확대다. 이 대통령은 100일 기자회견을 앞두고 열린 국민보고대회에서 당초 100조 원 규모로 공약했던 국민성장펀드를 150조 원으로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 재정을 마중물 삼아 민간 투자를 유도하여 인공지능(AI), 반도체, 미래차 등 첨단전략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펀드 재원은 정부(첨단전략산업기금) 75조 원, 민간·연기금·국민 출자 75조 원으로 조성되며, 단순 대출이 아닌 직접 지분투자, 인프라 투자, 초저리 대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집행될 예정이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와 같은 인프라 구축에 50조 원을 배정하는 등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전당포식 영업' 탈피,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
국민성장펀드와 함께 강조된 개념은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이다. 이 대통령은 금융권이 담보를 잡고 이자를 받는 손쉬운 '전당포식 영업'에서 벗어나, 국가의 미래 성장을 이끄는 생산적 영역으로 자금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여러 차례 역설했다. 이는 부동산 등 비생산적 부문으로 쏠린 자금을 혁신·벤처 기업으로 유도해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정책 방향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업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를 낮추고 주택담보대출의 위험가중치는 상향하는 등 건전성 규제 개편을 예고했다. 또한, 초대형 투자은행(IB)의 모험자본 공급 의무화, 보험사의 벤처투자 위험계수 완화 등 구체적인 방안을 통해 금융권의 체질 개선을 유도할 계획이다.
확장재정 기조와 재정 건전성 논란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정부의 의지는 2026년도 예산안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정부는 올해 본예산보다 8.1% 증가한 728조 원 규모의 '슈퍼 예산안'을 편성하며 확장재정 기조로의 전환을 공식화했다. 이는 저성장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규모를 정할 수 있는 재량지출 증가율이 10.3%로, 법률에 따라 지출 의무가 발생하는 의무지출 증가율(6.3%)을 크게 웃돈다는 점이다. 이는 AI, R&D 등 핵심 국정과제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한 결과로, 이전 정부의 긴축 기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이러한 확장재정은 국가채무 증가로 이어져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성장을 통한 세수 확대로 재정 기반을 강화하는 선순환을 기대하고 있지만, 단기적인 재정 부담은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남았다.
사회·노동: '주 4.5일제'와 노동 존중 사회
이재명 정부의 대표적인 사회·노동 분야 공약은 '주 4.5일제' 도입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장기적으로 주 4일제로 가야 한다"고 방향성을 제시하며, "가능한 부분부터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는 법을 통해 일괄적으로 강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대화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주 4.5일제 도입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방침이다. 2026년 예산안에는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중소기업에 직원 1인당 지원금을 지급하고, 신규 채용 시 장려금을 주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는 OECD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한국의 장시간 노동 문화를 개선하고,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보장하여 노동 생산성을 높이려는 시도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인력난 심화와 기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정치·사법: '수사-기소 분리'를 핵심으로 한 검찰개혁
이재명 정부가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는 개혁 과제 중 하나는 검찰개혁이다. 그 핵심은 검찰이 독점해 온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다. 정부는 검찰청을 폐지하고, 수사 기능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으로, 기소 및 공소유지 기능은 '공소청'으로 이관하는 내용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장동 사건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던 경험을 언급하며 "제가 (검찰권 남용의) 최대 피해자"라고 말하며 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는 검찰의 권력이 정치적 보복이나 표적 수사에 악용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다만 개혁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두고는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이다. 중수청을 어느 부처 산하에 둘 것인지, 경찰에 어느 수준까지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것인지 등 세부 쟁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 대통령은 "정부가 주도하되 전문가, 여야, 피해자, 검찰 의견도 듣겠다"며, 1년의 유예기간 안에 최적의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교·안보: 실용주의에 기반한 한반도 평화 구상
대북 정책과 외교 분야에서 이재명 정부는 '실용주의'와 '대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 대통령은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대화를 전면 단절하는 것은 정말 바보짓"이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켜 남북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러한 기조에 따라 정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는 등 선제적인 긴장 완화 조치를 실행했다.
또한, 80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남북 간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 단계적으로 복원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하되,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통해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균형 잡힌 외교를 펼치겠다는 것이 이재명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방향이다.
결론: '회복'을 넘어 '성장'으로, 국민 통합의 과제
이재명 정부의 지난 100일은 ';회복'과 '정상화'라는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며 국정의 기틀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두 차례의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는 민생경제 회복을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AI 강국 도약, 주 4.5일제 도입, 검찰개혁 등 담대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며 '성장'으로의 전환을 예고했다.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한 개혁 드라이브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낳고 있다. 확장재정 기조에 따른 재정 건전성 문제, 주 4.5일제를 둘러싼 노사 갈등,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 등은 앞으로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다. 무엇보다 탄핵 정국을 거치며 깊어진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고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처럼 국민 통합을 이루어내는 것이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가늠할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회복'의 단계를 넘어 '성장'의 결실을 국민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이재명 정부 앞에 놓인 시대적 과제다.